계보학적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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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푸코가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이어지는 그 자신의 방법론을 구축한 까닭은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체계를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어느 시대에든 널리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침묵 속에 남겨지는 목소리가 있다. 또한 어느 시대에든 어떤 목소리를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련의 체계와 법칙이 존재한다. 그 탐사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 마침내 오늘날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 조건까지도 논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이 지금 우리를 이와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게 하는가?”
〈계보학적 컵〉은 그 푸코조차도 한 번도 다룬 바 없었던 한 침묵의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작업이다. 컵의 목소리. 역사 이전의 태고부터 시작하여 여러 제국과 인간의 흥망을 아울러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역사를 논함에 오직 선택받은 인간들의 목소리만을 주목해왔다. 하지만 <계보학적 컵>은 바로 그 지나간 순간들을 응시해온 컵들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여덟 개의 컵, 여덟 개의 목소리 속에서 오랫동안 못 박혔던 풍경들의 초점은 뒤틀린다. 구석을 중심으로 끌어당겨 미쟝센을 흔들어라. 미세하게 요동치고 사라지는 주파수를 포착하라. 몸을 낮춰 컵을 향해 귀를 기울여라. 그리하여 그들 목소리 속의 괴이하고 애틋하며 어리석고 허망한 인간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목소리-체계를 둘러싼 장막에 실금을 긋고 우리의 존재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