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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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이튼스쿨 출신의 영국 해적 제임스 선장’에 대해 알고 있느냐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하지만 ‘후크 선장’에 대해 알고 있느냐 묻는다면 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갈고리Hook로 된 손을 휘두르며 네버랜드를 누비는 이 악당은 보통 제임스 후크로 통한다. 그의 성姓은 오래 전 잊혀졌고 이미 그의 신체가 된 갈고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더 이상 영국 명문가 출신의 제임스 아무개란 인간 이 아니다. 그는 바로 후크, 갈고리이다. 갈고리 선장이다. ‘컵 선장’은 그 후크 선장의 후배 격이 된다. 그는 한손을 잃고 그 자리에 후크 대신 컵 하나를 가져다 끼웠다. 컵 선장은 컵을 손처럼 쓰려고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그는 불가능한 일이다. 손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서 컵에 손가락이 돋아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제 그는 본디 자신이 손을 다루던 방식과 컵을 다루던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손도 컵도 아닌 ‘손을 대신한 컵’과 새로운 동조를 꾀해야 한다. 시행착오를 거듭해가며 그것의 새로운 사용법을 발명하고, 그 변화가 만들어낼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는 어느덧 컵이 이미 자기 신체의 일부가 되었음을, 자신의 신체가 컵과 함께 새로이 거듭났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의 손은 컵이다. 컵은 그의 손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손도 컵도 아니게 된다. 그는 선장도 컵도 아니게 된다. 컵과 함께, 그는 컵-선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