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민들레의 느슨한 연대

책을 통해 배운 ‘환대’의 개념

<사람, 장소, 환대>를 바탕으로 진행된 청년 읽기모임 ‘환대하는 청년들’ (이하 환청)에서는 세 가지 개념 아래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성원으로서 어떻게 타인을 환대할까?라는 질문을 던져왔다. 책 속에서는 주로 제목의 세 단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갔는데, 각 단어의 사전적 정의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얽혀 있는 깊은 의미까지 탐구했다. 사회라는 장소 속에서 성원권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 또한 또다른 성원권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환대하는지에 대한 책.

사람 성원권
장소 사회
환대 사회에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저자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 속에서 그 사람이 위치한 자리 또는 장소를 갖는다는 것이고, 환대는 그 사람들이 타인에게 본인들이 속한 사회의 ‘자리’를 준다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과 장소를 근원적으로 보는 것은 아렌트와 그 결을 같이하지만, 아렌트는 정치적, 법적 문제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저자는 공동체와 주체를 궝하는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층위로 그 시야를 확장시킨다. 얼굴과 가면은 다른데, 가면 뒤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얼굴은 신성한 것 또는 명예이다. 신성함은 의례를 통해 확립되고 재생산된다. 어떤 사람의 연기가 맘에 안 들고, 그가 만들어 내는 것이 가면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그 가면을 굳이 벗기려하지 않을 때, 그가 가면을 완성하도록 도와주고, 실수로 가면이 벗겨져도 못 본체할 때, 그의 가면 뒤에 있는 신성한 것에 경의를 표할 때 그 사람은 얼굴을 갖게 된다. 즉 사람이란 그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어느 한 ‘자리’ 또는 ‘장소’를 일정 부분 차지하고, 타인들에게 그 인정을 받고 있는 상태인 사람이다. 동물적인 인간과 다른 점이라면 사람은 사회의 한 장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자리를 함께 공유하며 사람을 사람임을 인정하며 타인을 환대해야 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타인을 인정하는 행위인 환대인 것이다.

나에게 ‘환대’가 미친 영향
공부를 계속 하고자 하는 청년으로서 읽기모임을 한다는 것은 배움에 대한 끈을놓지 않으려 하고, 모든 일에 있어서 인문학적 접근 방식을 잊지 않으려 함이었다. 대학 졸업 후 텍스트와 학술적인 지식이 전부였던 나에게 민들레에 있음(being-at-Mindle)은 현장감은 물론 단면적으로만 무언가를 바라봤던 나에게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해 줬다. 나 혼자 컴퓨터나 책 앞에 앉아 골똘히 고민하고 연구하며 책 속의 바다를 헤엄치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그게 전부였던 줄 알았던 우물안 개구리였다. 그런 나에게 사피엔스 읽기모임과 환.청 모임은 무언가를 조금 더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선물해줬다. 어떤 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단면이 아니라 입체적인 어떤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나 할까. 현장에서 일하며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그 결을 같이하는 부분도 있는 반면 개인적으로 정말 안 맞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마치 종이인형처럼 사람들의 한 면만 보였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 주변 사람들은 피와 살로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생각 또한 천차만별인 사람들이다. 같이 책을 읽으며 환청 멤버들과 같이 고민하고 공감했던 건 사실은 다각의 입체면들 중 겹치는 면들이 많아서일 테다. 민들레는 처음부터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무언가에 집중해왔다. 스스로 서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알아야 하고, 나와 타인이 어떻게 다른지, 그 타인을 내 사회 안에서 어떤 자리에 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생각이 이어져야 한다. 이렇게 보면 민들레는 타인을 어떻게 ‘환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평생 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학교 밖, 제도권 밖에서 부조리함을 찾고 서로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민들레 사람들은 내가 일하기 시작 했을 때에도 그 boundary를 느끼지 않게 해 주려고 그 공간 안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뭔지 같이 고민해주고, 내가 나로서 오롯이 설 수 있게 민들레 공간 한 켠을 내어줬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조금씩 성장했다. 민들레의 이런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민들레를 오가는 청년들과 함께 읽기모임을 같이했다. 인문학적 지식에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환대하는지, 어떻게 소통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공부를 통해 진행했다. 강제적이지 않은 느슨한 연대 속에서 진행된 모임은 오히려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되었고, 끈끈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었다. 또한, 이번 모임의 주된 주제가 ‘환대’이니만큼 내가 중요하게 사유한 건 ‘타인과의 소통’이었다. 내가 서울살이를 처음 시작하고, 홀로 오롯이 설 수 있게끔 (아직 갓 태어난 기린처럼 휘청대고 있지만) 도와준 건 (민들레의 어른들 덕도 충분히 많지만,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건) 성북의 청년들과 함께한 읽기모임이었다. 지난 어느 날 나의 SNS에 짤막하게 올린 글이 있다. “내 삶의 유일한 낙은 필라테스와 민들레 읽기모임”이라고. 그만큼 홀로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자립하기 위해선 네트워킹이 필요했고, 공통된 문제의식 속에서 다각적, 입체적인 / 다양한 시각으로 그 문제의식을 접근하는 것 또한 매우 새로웠다. 뉴딜 지역혁신청년활동가로 일하며 받아왔던 스트레스, 현장에서 내가 오롯이 느끼는 어려움은 학계에 있을 때 느꼈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두가지를 연결할 수 있었던 건 청년들이 주도하는, 우리가 자립하기 위해 스스로 모여 인문학적 탐구를 진행하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읽기 모임. 나의 학술자-정체성, 그리고 활동가-정체성을 연결할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