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함께 공부하고-살기, 이윤하

청스를 처음 시작할 때, 그 전 해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내가 공부를 하면서 살고 싶은지 확신이 없었다. 다른 걸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공부도 재밌었고 여기에 뭐가 있다는 느낌도 있었고, 집 밖에서 복작복작 사는 것도 좋았지만, 나의 마음은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인가, 하는 의문을 떠나지는 못했다. 청스에서 그 의문을 종식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습록』과 『다른 이십대의 탄생』을 만나고

5월쯤부터 ‘나는 왜’를 쓰기 시작했다. 『전습록』으로만 열 몇 번을 썼다. 그중 세 번째 쓴 글은 한 문장도 책에 나오지 못했지만 쓸 당시에는 중요한 글이었다. 『전습록』을 읽으니 공부하고 싶어졌다! 가 내용이었다. 『전습록』은 내가 ‘공부’라고 생각하는 것의 느낌을 많이 바꿔놓았다. 양명은 떳떳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절실히 하는 것이 공부라고 했고, 나는 양명이 말하는 것처럼 살고 싶어졌다. 그 시기 즈음 문탁의 세 청년들이 『다른 이십대의 탄생』이라는 책을 내려고 하고 있었고, 운이 좋게 리뷰를 쓰게 되면서 그 책을 읽었다. 세 청년들이 각자가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글을 쓰는 현시점까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지고 볶으며 함께 글을 쓰는 것은 벽을 치는 대신 서로에게 개입하는 관계를 만들었고, 길드다를 하면서 나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가 ‘내 현장’이라고 생각하는 활동-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남았다. 그런 것이 가능한데 임금노동과 ‘적당 거리’의 심심한 관계를 좋아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후로 나의 마음은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인가, 하는 의문은 굳이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확신의 문제도 아니었고, 나는 그냥 떳떳하지 못한 내 습들을 고쳐가면서 떳떳하게 사는 길을 닦고 싶었고, 서로 개입하는 관계를 만들고 어떤 활동이든 내 현장-공부로 삼는 것을 계속 배워나가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고동락’과 ‘청백전’

실제로는 쉽지 않았다. 한 해 동안의 공부 중에 좀 더 운영에 참여했던 두 세미나가 있었는데, 문제의 온상이었기 때문이다. 동고동락에서는 함께하는 중년샘들이 ‘책 이야기’가 아니라 샘들 자신의 이야기만 하시는 것 같았고, 청백전에서는 같이 운영하는 멤버들이 지각하고 책도 열심히 안 읽어왔고, 뭘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동고동락의 세미나 방향을 가지고 동양철학팀과도 몇 번 심각히 이야기하기도 했다. 문제는 세미나가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새롭게 발견하고, 배움이 일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다보니 나는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다 싶으면 어떻게 책 이야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고, 책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도 우리가 하는 말이 맞는지 아닌지 진위여부를 가리는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그 장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똑같았다. 2학기가 되었고, 나는 내가 뭘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샘들이 책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셔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제서야 샘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전에는 샘들이 당신들의 경험 이야기를 하시면 어떻게 이것을 연암의 이야기와 연결시키지..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데 잘 들어보니 그 이야기들 자체가 이미 책을 만나서 길어 올려진 이야기였다. 또 샘들이 지금 생생하게 겪고 계신 중요한 문제들이었다. 오히려 샘들이 나보다 더 책들과 온 몸으로 부딪히고 계셨다. 그걸 느끼게 되면서부터 세미나가 재밌어졌고, 서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공부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청백전에서도 비슷했다. 나는 사람들이 책을 좀 열심히 읽고, 재미를 발견하고, 같이 세미나하는 시간을 배움으로 가져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시간을 그냥 써버리고 있는 것 같았고, 각자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고, 책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꽉 정체된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샘들의 도움으로 운영멤버들과 이야기를 트게 되었다. 같이 이 세미나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말이다. 그쯤 되어서야 나도 이 사람들에게 뭘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마음으로 세미나를 하는지, 무엇이 여기에 오게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부터 나도 ‘공부는 재밌는 거야!’라고 청백전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어필하고 주입하지 않게 되었다. 그건 내가 말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혹 그 사람이 잊어버리고 있거나 막막해한다면, 그런 것들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물어보고, 이야기하게 하고, 잘 풀려나오게 도와주면 되는 것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각자 어떤 것을 공부거리로 삼고 싶은지부터 이야기하고 시작했고, 적어도 그만큼은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새삼 같이 공부하는 것이 재밌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의 공부 지점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문제를 넘어서는 힘이 되고, 서로에게서 배울 점을 발견하고. 이런 관계에 무게가 실리고, 또 관계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고립시키는 사심에 대한 ‘나는 왜’를 쓰면서, 혼자 밖으로 나가서 카페에 가는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혼자’ 나가있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 어느 정도 그런 우울함을 내장(?)하고 살 것 같았는데, 없어져서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다. 같이 공부하는 장을 만들고, 그곳에서 활동을 꾸리기, 그것만큼 재밌고, 해볼 만한 일은 없다는 게 지금 내 생각이다. 그 위에서 사심없이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또는 무엇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것이 내 공부 자리인 것 같다.

메이저 말고 매니저, 문빈

올해, 처음으로 청년 공자(공부로 자립하기)스쿨 ‘스페셜’이 시작되었다! 이름하여, 청스! 연구실에 있는 노땅(?!) 청년들이 모여 이 새로운 실험에 참여한 것이다. 실험내용은 이렇다. 공부와 생활, 활동의 밀도를 상당 수준으로 높여보기! 그렇게 밀도 있는 일상을 경험해보고, 각자 연말에 결정해오기로 했다. 자신이 정말 ‘공동체의 리더’로 살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공부하는 신체’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백수다, 방탈, 청공 1기를 거친 ‘나’는 노땅 중의 노땅이었다^^ 공부가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던 때, 마침 강도 높은 프로그램이 생긴다기에 내심 설렜다. (물론 두렵기도 했다) 1년만 버티면 글도 잘 써지고, 책도 잘 읽히고, 말도 잘 하게 될 줄 알았다. 이렇게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나는 ‘나’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아주 비장했다! 그런데 웬걸~ 1년 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고, 새로운 활동을 체험하면서 내 안에 새로운 욕망이 생겨났다. 그건 바로 ‘주인공’이 아닌 ‘매니저’로 살아가기다!

새로운 질문의 탄생

그동안에는 중구난방으로 다양한 텍스트를 읽었다면, 청스에서는 자신의 전공과목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탐구해 보기로 했다. 나는 서양철학, 동양철학, 의역학 중에서 의역학(동의보감, 주역, 사주명리)을 골랐다! 사주명리를 빼면 다 처음 접하는 텍스트였다. 그런데 아.뿔.사! 학기 초에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었다. 펴보지도 않은 ‘동의보감’으로 글을 써보라는 것이다. 함께 의역학을 선택한 친구들에게도(명이, 수정)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래도 마감의 힘은 대단했다. 다들 꾸역꾸역 시간에 맞춰 써오게 했으니. 그런데 나만은 아니었다. 글은 뒤죽박죽이었고 동의보감의 내용을 신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감은 닥쳐오고 글은 안 써지고, 더군다나 글을 완성하지 못하면 ‘전과’시킨다는 곰샘의 무서운 엄포까지 들은 상태였다. 곰샘, 창희샘, 장금샘. 순환하며 날카로운 피드백을 받았지만, 글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막막했고 멘붕~ 상태였다. 시간은 점점 쪼여왔고 노트북 모니터를 보면 우울해지기만 했다. 그때 내가 참 안 돼 보였던지, 함께 공부하던 친구(명이)가 글 쓰는 걸 전면적으로 도와줬다. 어떤 날은 5시간 넘게 붙어서 함께 글을 써주기도 했다. 그렇게 어찌어찌해서 글이 완성됐다. 그때 나는 나의 글의 완성보다 그때 그 친구의 마음에 보답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고 감동을 했다. 그러면서 ‘이 친구는 나를 어떻게 이렇게나 도와줄 수 있지?’라는 존재적 질문이 생겼고. ‘내 것’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열리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아!

나는 그 화두를 가지고 활동을 하고 공부를 했다. 의역학팀의 주요 활동 중 하나는 사주 명리 조장을 맡는 것이었다. 남산강학원&감이당에서 사주 명리는 공부를 처음 입문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이 오신다. 나의 임무는 그 선생님들과 즐겁게 명리를 가지고 떠드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 명리 조장을 했을 때는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되었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자신의 개성을 가지고 다양한 어투로 말을 하는데 나에겐 잘 들리지 않았다. 명리 강의를 들으러 오신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내가 아는 걸 설명하거나 혹은 “잘 모르겠다.”라며 질문을 피할 뿐. 상대방에 관해 질문하고 궁금해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조의 출석률이 제일 저조했다.^^ 그때 올라왔던 자의식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나는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아직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 수 있을까?’ 매주 고민하게 됐다. 그렇게 점차 나만의 노하우같은 게 생겼고. 내가 무언가를 억지로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 간에 이야기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걸 보면서 기쁜 마음이 들었고. 함께 식사하면서도 앎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선생님들의 수다를 듣고 있으면 내가 덩달아 벅차오름을 경험했다. 명리를 통해 나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충만해질 수 있음을 조금씩 느껴갔다.

손님을 맞이하는 기쁨

연말에 『나는 왜 고전을』,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책이 출간됐다. 특히 『나는 왜 고전을』 책은 나에게 큰 감동이었다. 48인의 저자가 함께 썼다는 것도 멋지지만, 그 안에는 48인의 저자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인연이 겹겹이 쌓여있다는 사실이 더욱 감격스러웠다. 도반들의 피, 땀, 눈물이 함께 전해졌다고나 할까?! 나와 호정, 수정은 바로 그 책들의 탄생을 축하하는 북파티를 매니징하기로 했다. 첫 회의는 성공적이었다. 다들 의욕이 넘쳤다. 이 생각, 저 생각 아이디어들이 뿜뿜! 그런데 다들 일상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북파티 매니징은 뒷전이 됐다. 첫 회의 때의 그 능동성은 어딘가로 증발해 버렸고 다들 어디서부터 준비해나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내가 먼저 ‘능동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고, 모두 함께 주인-되기를 해보자며 함께 방향을 확 틀었다. 그때부터 북파티 활동에 활력이 붙기 시작했다. 손님들의 동선 체크부터 간식 세팅 위치, 신발 놓는 공간까지! 세세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핑퐁 핑퐁 하는 의견들은 거부감이 아닌 활기로 다가왔다. 북파티 당일 날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과 시간표를 공유하고, 선생님들에게 이것저것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북파티가 시작되었다. 강의 시간을 갑자기 조정했는데도 유머로 받아주신 곰샘. 2주 전에 랩 낭송을 급하게 부탁했는데도 너무 멋진 무대를 만들어준 MC동연샘. 목성, 금성 낭송팀 그리고 나는 왜 저자들까지. 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너무 고마웠고 흐뭇하고 행복했다. 120명의 손님이 찾아왔는데. 그들과 이들을 연결해주었다는 쾌감도 짜릿했다! 손님을 맞이하고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일이 이토록 고귀하다니!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매니저’로 사는 삶을 무한 긍정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