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불광파
비제도권에서 논문을 쓴다는 것

Part.1, 록이綠彛

나는 살아오면서 줄곧 역사를 통해 세계를 바라봐왔기에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에서 쓴 졸업논문도 역사를 주제로 했다. 그 논문에선 ① 식민사학 혹은 식민주의 역사학이 무엇이고 한국사 연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하고, ② 이것을 극복하는 논리가 백남운이라는 맑스주의 역사학자에 의해 마련되었으며, ③ 그의 작업이 한국사학계의 주류 논리인 내재적 발전론 혹은 자본주의 맹아론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 ④ 그 논리가 오늘날에 보았을 때 한계가 많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으니, 이를 뛰어넘은 새로운 역사 인식 및 연구 방법론이 필요함 등을 다루었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단순히, 삼색불광파에서 진행할 논문 작업을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졸업논문의 ‘추후 과제를 해결한다.’라는 문제의식에서만 출발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삼색불광파에서 논문 준비 스터디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왜?>라는 것을 말해야만 했고, 이와 관련된 것들이 내게 있어 주된 난관이라 할 수 있었다. 스터디를 반년 가까이 진행하며 찾은 <왜>는 다음과 같았다. 내가 세계를 보건대, 해결되지 않은 채 누적되어온 문제들이 ‘산더미’였다. 그리고 이를 역사학의 언어로 치환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질문 찾기’의 시작이었다. 이 고민을 거듭해보니, 역사와 세계를 보는 데 있어 사람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너무 표면만 보지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며’, 동시에 ‘일차원적으로만 보니 원인 설명과 해결책 마련을 전혀 못 한다’라는 문제의식이 내게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문제의식을 통해 ‘어떻게 보는 게’ 중요해진, 즉 어떤 인식이 적합하겠냐는 질문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세계체계 분석을 다루고자 한 이유가 되었다. 세계체계 분석의 주요 분석대상은 자본주의의 기원과 역사와 체계이고, 이는 내부적인 변화와 외부적인 개입이 서로 연동되어 있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이는 뒤에 간단히 설명하겠지만, 내재적 발전론 혹은 자본주의 맹아론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한국사 인식의 기초를 마련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쓰게 된 논문은 대략, 오늘날 한국사학계의 주류인 내재적 발전론 혹은 자본주의 맹아론이 어떤 의의가 있고, 한계가 있는지 논증하면서 세계체계 분석이라는 것이 앞으로의 역사연구에 도입돼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작업을 통해 나 자신의 역사 인식을 재고하는 동시에, 어떤 인식이 역사를 한층 더 제대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먼저, 내재적 발전론 혹은 자본주의 맹아론은 김용섭의 경영형 부농론과 강만길의 상업 자본주의론을 비롯한 여러 선학의 고투 끝에 나왔다. 이 이론의 요지는 조선시대 후기에 농업과 상업 등 여러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와 발전을 증명함으로써, 조선 사회에 자본주의 사회로의 전환이 자생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는 주장에 있었다. 즉, 농업에선 농작물이 다양해지고 생산력이 상승함에 따라 소위 ‘경영형 부농’이 등장하고, 상업에선 경강상인이나 개성상인같이 매점매석 형태의 독점상업집단이 등장해서 부를 축적한 사례가 나타났기에 자본주의 사회로의 전환 가능성이 엄연히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조선시대가 정체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역동적이었음을 드러내어, 한국사 인식이 식민사학에서 탈피하는 데 기여한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이 이론의 이론적 차원과 실증적 차원에서 발견되는 한계를 지적했는데, 전자에서는 소위 ‘피식민 콤플렉스’ 및 서구·근대중심주의에 기초한 인식에서 나온 점, 후자에서는 이 이론이 주장하는 자본주의의 자생지점이 찾기 힘듦을 논증했다. 동시에 일본 덕분에 한국 자본주의가 발전되었다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장에도 동조하지 않음도 증명했다. 여기까지의 것을 바탕으로 왜 세계체계 분석을 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연유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세계체계 분석은 그 기초 논자인 칼 폴라니와 칼 맑스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발생 요건이 무엇인가를 짚어보는 데까지 다루어보았다. 그 중, 칼 폴라니가 국지적 시장·원거리 시장·전국시장이란 세 층위로 나누어 시장을 분석한 작업을 통해, 전국시장의 존재 여부가 자본주의의 발생을 결정짓는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리고 칼 맑스를 통해선 ‘원시축적’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인간을 토지에서 분리해 노동자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함을 논증했다. 이를 통해서, 내재적 발전론 혹은 자본주의 맹아론의 한계가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겠다. 전자에서는 조선시대 후기에 활성화된 시장은 국지적(작은 차원의 / 재래) 시장이었지, 전국(자본주의적) 시장이라 보기는 어려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후자에서는 한국사학게가 일국사적인 관점과 서구 자본주의 발전 궤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바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논문은 시간과 역량의 부족으로 다루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기에, 다음의 몇 가지를 추후 과제로 설정하는 바다. ① 내재적 발전론 혹은 자본주의 맹아론의 보다 체계적인 파악, ② 비판논리의 보충 및 여기에 대한 재비판, ③ 세계체계 분석에 입각한 본격적인 역사연구, ④ 사람(민중)의 대응을 이념과 이론의 틀에 구속하지 않고 역사 전개에 끼친 영향 및 변수를 파악하는 것이 그러하겠다. 이상을 통해 얻게 된 현시점에서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결국은 시스템과 사람을 같이 인식해야 세계를 정확하게 볼 수 있으며, 나아가 문제해결의 방도를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전제를 성립시키기 위해서, 나는 이론의 숙달과 현실의 이해를 끊임없이 진전시켜 나아가겠다.

Part. 2, 고우준범, 춘식

1. 삼색불광파와 논문
삼색불광파는 지순협 대안대학의 졸업생들이 만든 독립 연구자-창작자-기획자들의 모임입니다. 지금의 삼색불광파가 지향하는 방향과는 훨씬 더 단순한 욕구가 이 모임을 시작하게 된 원동력이었다는 걸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순협 대안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우리가 겪었던 경험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유지하고 싶다는 것. 공부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끈질기게 붙잡고, 끝끝내 공부를 삶에 대한 실천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이어가고자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기에 지순협을 졸업한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의 고민과 공부의 다음 스텝을 위한 장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고, 그 시작으로 삼색불광파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순협 대안대학 졸업 이후에도 공부를 이어가고자 했던 욕구의 바탕에는 졸업을 위한 논문을 쓰는 과정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개월이라는 졸업 과정 동안 오롯이 자신의 고민을 학술적인 언어들 속에서 풀어헤치고, 또 해소하기 위해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저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공부를 통해 제가 가진 질문에 나름의 답을 찾아보며 일상적 삶과 공부를 치열하게 연결 지어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소위 ‘논문’ 그리고 논문을 위한 글쓰기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몇몇 있는 것 같습니다. 딱딱한 문장, 서론-본론-결론을 갖춘 형식, 주관적인 시선을 거두고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 등등. 일상적인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어 어렵고 낯선 것들이지만, 이로 인해 논문이라는 형식의 글쓰기가 지식을 축적하고 전수하는 측면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익히 잘 알려져있듯이, 논문과 같은 형식의 글쓰기는 주로 제도권 대학에서 이뤄집니다. 하지만 제도 대학의 경우, 작성자 개인의 질문이나 고민에서 시작하는 연구를 쉽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학계 내에서 개인이 하는 연구의 실용성을 생각해야 하고, 이미 주어져 있는 담론 위에서 출발해 새로운 지점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야 하는 연구에서는 작성자의 질문/고민이 드러나기 힘들고 학계의 흐름과는 다른 연구를 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제도권에서의 공부란, 때로는 개개인이 연구자로서 갖는 상상력을 제한할 뿐더러, 학계의 담론을 답습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제도의 바깥, 비제도권에서의 논문작성이 갖는 가능성을 생각하는 삼색불광파는 보다 더 자기 질문에서 시작하는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다소 딱딱할 수 있는 형식과 절제된 언어로 얘기를 풀어내는 과정이지만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객관적인 거리는 오히려 자신이 가진 질문에 대해 더 깊게 파고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나아가 고민을 풀어나가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하지요. 이렇듯 단지 학계의 흐름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고민에서 출발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연구와 그 결과물이 더 많아졌을 때 우리가 ‘담론’이라고 부르는 것에 있어서도 다양한 의미의 맥락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비제도권에서 논문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하나 찾을 수 있겠습니다. 삼색불광파에서 발행하는 저널 〈삼합〉의 창간호 안에 이 모임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문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삼색불광파의 첫 1년을 돌아보는 콘텐츠인 〈추적, 삼색불광파!〉에 담긴 문장 중 하나입니다. “학문에 빗대서 자신의 고민을 풀어보려 노력한다는 것.” 이와 같은 노력의 과정을 담은 정제된 결과물 중 하나가 삼색불광파에게는 논문이 아닐까 합니다.

2. 우리에게도 공부한 것들을 공유할 지면과 플랫폼이 필요하다!
앞서 논문 작성을 중심으로 스스로의 문제의식을 확장하고 공부를 이어가는 것이 삼색불광파의 첫 번째 동기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공부를 ‘지속’한다는 것인데, 언제까지 얼마만큼 공부하겠다는 것이 아닌 읽고 쓰며 공부하는 과정 자체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체화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의지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기존 학계에선 저널과 학술지 그리고 DBpia나 Riss 등과 같은 여러 플랫폼들을 통해 지식이 공유되지만, 제도권 대학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은 상태로 독립 연구-작업자를 자처하는 우리에게는 연구-작업의 결과물을 공개할만한 지면이나 플랫폼이 잘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는 지면이나 플랫폼없이는, 독립은 쉽사리 고립으로 변질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삼색불광파에서는 구성원들의 연구와 창작, 기획을 실을 수 있는 지면과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형식이 필요했고 직접 저널을 만들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 저널에 〈삼합〉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삼합이라는 음식이 세 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맛을 내듯이 삼색불광파 또한, ‘적(맑스주의)-녹(생태주의)-보라(페미니즘) 패러다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있습니다. 연구자-창작자-기획자 간의 구분을 허물고 협업을 이루어내자는 것입니다. 구성원들 간의 협업뿐만이 아니라, 개별 주체 또한 한 영역에만 한정되지 말고 세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들자는 취지이기도 합니다. 삼색불광파는 시작부터 오직 공부‘만’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음악, 전통연희, 문화기획, 영상 등-에 어떠한 영향을 받길 원하거나 자기와는 다른 장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있으며 파생되는 새로운 자극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모임의 저변에 가장 크게 깔려있는 것은 공부이나 그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낼지에 대해서는 제한 없이 열어두었고, 저널 〈삼합〉은 그 시작이 되었습니다. 적녹보라 패러다임에 대한 공감과 연구자-창작자-기획자의 협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은 〈삼합〉에는 중심이 되어주는 논문이 실려 있고 이 논문의 주제를 함축하는 키워드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 키워드와 관계된 글과 창작물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으며, 수록된 이미지와 디자인 또한 각호의 키워드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프로세스를 거쳐 삼색불광파는 올 한 해 동안 〈1호: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과 〈2호: 관계로서의 역사〉를 발간했습니다. 이렇듯, 삼색불광파에서는 〈삼합〉이라는 지면을 만들어 비제도권에서 논문을 쓰고, 학술적인 언어를 빌려 개인의 고민을 풀어보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삼합〉만을 통해서는 결코 해소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질문 하나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삼합〉을 기획하는 데 있어 출발점이 되었던, 비제도권에서 생산되는 공부의 결과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유롭게 공유될 수 있는 장에 대한 고민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도권 바깥에서 생성된(오히려 제도의 바깥이라서 가능하기도 할) 다양한 연구의 결과물들이 한자리에서 자유롭게 공유될 수 있을까? DBpia나 Riss가 제도권에서 나오는 연구의 결과물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공유하고 인용하고 참고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라면 비제도권에서도 이와 같은 플랫폼이 필요하지는 않을까?와 같은 질문을 담고 있는 고민입니다. 비제도권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대학으로 대표되는 제도권에서 나온 지식과 정보들을 접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누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떻게 풀어보려 했는지를 쉽게 살펴볼 수 없다는 것은 당장에 그 주제를 공부하는 데 있어 어려움으로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만약 비제도권에서 공부한 결과물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면, 서로 인용하고 참고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비슷한 관심사와 주제를 가진 다른 이와 직접 연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것처럼 비제도권에서의 공부는 기존 학계의 담론이 아닌 연구자 자신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연구에 초점을 맞추기에, 다양한 주제와 방법론 등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상의 것은 당장에 실현할 수 없고, 아직은 막연하기만 한 고민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여섯팀이 모여 비학술적 학술제가 시작되었고, 연어어 이런 행사를 함께 기획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비제도권에서 생산되는 지식의 결과물들이 한 자리에서 공유되는 플랫폼을 상상하는 게 꼭 비현실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학문에 빗대서 자신의 고민을 풀어보려는 노력”이 갖는 의미. 그리고 비제도권에서의 지속 가능한 공부와 그에 관한 삼색불광파의 고민을 풀어보았습니다. 이상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