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적인 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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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하면 떠올리게 되는, 완벽하고 멋진 ‘컵’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묻는다. “‘컵’이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걸까?” 그렇게 보면 이 유토피아적인 컵은 보잘 것 없는 현실의 컵을 잊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미셸 푸코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적인 컵이야말로 현실의 컵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릇 컵이란 무언가를 담는 것이므로 그 정체가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컵으로 반죽의 모양을 내기도 하고, 감정을 표출하다가 컵을 깨기도 한다. 컵은 그 정체가 분명한 동시에 불분명하기도 한 것이다. 또 컵은 어떤 액체라도 담을 수 있으므로 열려있지만, 동시에 액체의 영역을 한정짓고 외부와 경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닫혀있기도 하다. 분명하지만 불분명한, 열려있지만 닫혀있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컵,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모순이 한데 뒤섞여 뒤범벅 되어있는 유토피아적인 컵, 그것이 바로 현실에 있는 컵이다. 모순 하나 없이 완벽한 컵의 존재유무를 묻는 질문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질문을 바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컵은 어디에 있는가?” 컵은 고대 중국 양자의 손에 있었고 공자의 머릿속에 있었지만, 오늘날 수영하는 사람의 입에도 있고 또 드라큘라의 날카로운 이빨에도 있다. 실상 컵은 언제나, 매번 다른 곳에 있어왔다. "실상 내 몸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다른 곳들에 연결되어 있다. … 몸은 세계의 영도point zero이다."* 그리고 이 영상은 세계의 영도를 생성하기 위한, 고대 중국 문헌과 현대 한국 미디어의 패치워크이다.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유토피아적인 몸」, 문학과 지성사, 이상길, p.36-37